트럼프 “호르무즈 무료 통행” 선언, 중동 해양 안보 질서의 구조적 재편

106일간 지속된 무력 충돌이 외교적 타결점을 찾으면서 페르시아만 지역의 전략적 지형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워싱턴과 테헤란 간의 평화 협상이 스위스에서의 공식 서명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번 합의가 지닌 지정학적 의미는 단순한 전투 종결을 넘어선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체제에 관한 조항이다. 세계 석유 운송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이 전략적 수로에 대해 미국 행정부가 통행료 영구 면제를 공언한 것은 전례 없는 양보로 평가된다. 이는 과거 냉전 시대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국제 협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 조건이다. 해양 교통로를 경제적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전통적 해양 강국의 전략에서 벗어나, 자유 항행을 전면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역내 긴장을 완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합의 구조는 1970년대 데탕트 과정에서 나타났던 ‘상호 양보를 통한 긴장 완화’ 패턴과 유사성을 보인다. 당시 미소 양국이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통해 군비 경쟁을 조절했듯이, 현재의 협상도 해상 통제권이라는 핵심 전략 자산에 대한 상호 양해를 기반으로 한다. 다만 1970년대와 달리, 현재는 다극화된 국제 체제 속에서 역내 동맹국들의 반발이라는 변수가 추가되어 있다.

실제로 텔아비브에서는 이번 합의에 대한 강한 우려가 표출되고 있다. 이스라엘 안보 당국은 이란의 영향력 축소 없이 이루어진 평화 협상이 장기적으로 역내 세력 균형을 교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는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당시 아랍 국가들이 보였던 반응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 협정이 아랍연맹 내부의 분열을 야기했듯이, 현재의 미-이란 합의 역시 중동 내 동맹 네트워크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

전술적 관점에서 볼 때, 협상 직전 발생한 레바논 공습은 합의를 좌초시키려는 전형적인 ‘스포일링(spoiling)’ 작전으로 분석된다. 평화 프로세스 연구에서 자주 관찰되는 현상으로, 협상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켜 협상을 방해하는 전략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직후 발생한 일련의 테러 공격들이나, 2015년 이란 핵협정(JCPOA) 전후로 나타난 역내 군사적 긴장 고조가 유사한 사례다.

이란 측이 “협상 지속이 무의미하다”고 반발한 것은 협상 전략상 예측 가능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파키스탄 총리가 중재자 역할로 협상 타결을 공식 확인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슬라마바드가 중재 역할을 수행한 것은 남아시아 국가가 중동 분쟁 해결에 직접 개입한 드문 사례로, 이는 중동 질서가 더 이상 전통적 중동 국가들만의 영역이 아님을 시사한다. 2019년 사우디 석유 시설 공격 이후 파키스탄이 보여준 중립적 입장이 신뢰를 구축했고, 이것이 중재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가 서명식 장소로 선정된 것도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제네바는 역사적으로 국제 분쟁 해결의 중립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 종결, 1985년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 등 냉전 시대 주요 협상들이 이루어진 곳이다. 중립국 영토에서의 서명은 양측 모두에게 안전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상징적 장치로 작용한다.

향후 시나리오를 전망하면, 단기적으로는 협정 이행 과정에서의 갈등이 예상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통제권 문제, 이란의 핵 프로그램 투명성, 역내 대리전 중단 메커니즘 등 구체적 이행 조건을 둘러싼 해석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중기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역내 반발 세력의 대응이 변수가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번 합의가 중동 지역의 새로운 안보 체제로 정착할지, 아니면 일시적 휴전에 그칠지는 구조적 신뢰 구축 메커니즘의 작동 여부에 달려 있다. 역사적으로 중동 평화 협정의 지속 가능성은 평균 30% 미만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합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국제사회의 감시와 보장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