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직장인이 치매 진단받기까지…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식단의 역할

“회의 중에 멍하니 있기만 하고, 거래처 이름도 잘 떠오르지 않았어요.” 인쇄업체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던 38세 남성이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를 찾았을 때, 의료진이 내린 진단은 전두측두 치매였다.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기형 교수는 “아직 어린 아이의 아버지였고,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 할 나이였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흔히 치매는 노인성 질환으로 여겨지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40~50대 환자가 적지 않다.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는 전체 치매의 약 10%를 차지하며, 이들 환자는 처음에는 우울증이나 번아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 뇌는 서서히 손상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의학계와 영양학계는 일상적인 식습관이 뇌 노화 속도를 늦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신경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가 축적되는데, 이는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져 결국 치매나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미국 로마린다대 연구진이 약 4만 명의 성인을 1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달걀 섭취와 치매 위험 감소 사이에 명확한 연관성이 발견됐다. 달걀을 전혀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 한 달에 1~2회 섭취하는 경우 치매 위험이 17% 낮았으며, 주 2~4회 섭취 시에는 20%, 주 5회 이상 섭취할 경우에는 27%까지 위험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달걀에 풍부한 콜린 성분은 기억력과 학습 능력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생성에 관여하며, 비타민 B12 역시 인지 능력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핀란드 이스턴대의 장기 추적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43~60세 남성 2,497명을 평균 22년간 관찰한 결과, 포스파티딜콜린 등 콜린 계열 성분을 충분히 섭취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치매 발생률이 28% 낮았다.

녹차도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녹차에 함유된 EGCG는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통해 신경세포 손상을 억제하며, L-테아닌과 카페인의 상승작용으로 주의력, 기억력,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2022년 발표된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녹차를 꾸준히 마신 그룹에서 우울 증상이 완화되고 인지 기능 저하가 억제되는 경향이 관찰됐다.

카카오 함량 70% 이상의 다크초콜릿 역시 뇌 건강에 유익한 식품으로 꼽힌다. 2024년 국제학술지 뉴트리언츠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카카오 폴리페놀이 풍부한 다크초콜릿 섭취 시 난이도 높은 인지 과제에서 정확도가 유지되고 뇌 활성화 효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양사 크리스틴 커크패트릭은 “뇌 건강을 위해서는 플라보노이드 같은 식물성 화합물 섭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황의 주요 성분인 커큐민은 혈액-뇌 장벽을 통과해 뇌 조직에 직접 작용할 수 있는 천연 화합물이다. 2018년 미국 노인 정신의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 경도 인지 장애가 있는 50~90세 성인에게 커큐민을 18개월간 투여한 결과, 대조군 대비 기억력이 약 28% 향상됐다. 단, 커큐민은 단독 섭취 시 체내 흡수율이 낮아 흑후추와 함께 먹는 것이 권장된다.

반면 피해야 할 음식도 분명히 있다. 미국공중보건저널에 게재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초가공식품을 가장 많이 섭취한 사람들은 가장 적게 섭취한 사람들에 비해 치매 발생 위험이 58% 높았다. 핫도그, 쿠키, 감자칩 등 포장 식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식품은 첨가당, 나트륨, 포화지방 함량이 높고 유화제나 고과당 옥수수시럽 같은 인공 첨가물을 포함하고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연구팀은 치매가 없는 60세 이상 1,865명을 장기 추적 관찰한 결과, 염증 유발 가능성이 낮은 건강한 식단을 유지할수록 이미 알츠하이머병 관련 뇌 변화가 진행된 고위험군에서도 치매 발병 위험이 20~30%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지중해식 식단처럼 신선한 과일과 채소, 통곡물, 생선, 올리브오일을 중심으로 한 식사가 만성 염증을 줄이고 신경퇴행을 늦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채소, 과일, 견과류, 통곡물 섭취를 늘리고 가공육, 붉은 고기, 당 함유 음료 섭취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뇌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초로기 치매는 초기 증상을 다른 질환으로 오인하기 쉬워 식습관 개선을 통한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