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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난 80대 할머니께서 지난주 응급실에 실려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탈수와 어지럼증이 원인이었는데, 알고 보니 한낮에 무료급식소를 찾아다니시다 쓰러지신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집에 있으면 더워 죽겠는데 에어컨 틀면 전기요금이 무서워요”라는 말씀이 제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최근 울산의 한 무료급식소에서는 배식 시작 1시간 전부터 어르신들의 긴 줄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평소 80명 정도였던 이용객이 폭염이 심해지면서 100명이 넘게 몰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냉방비 부담 때문에 시원한 곳을 찾아 은행, 병원, 무료급식소를 전전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입니다.
의사로서 이런 상황이 건강에 얼마나 위험한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령자는 체온조절 능력이 젊은 사람보다 현저히 떨어집니다. 땀샘 기능이 약해져 있고, 갈증을 느끼는 감각도 무디어져 있어 탈수가 와도 본인이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더위를 피해 장시간 밖을 돌아다니면 오히려 열사병이나 일사병 위험이 커집니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병 약을 복용하시는 분들은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일부 혈압약은 이뇨작용이 있어 탈수를 가속화할 수 있고, 당뇨약 중에서도 땀을 많이 흘릴 때 저혈당 위험을 높이는 종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름철 응급실에는 더위 관련 합병증으로 내원하시는 어르신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선 에어컨 사용이 두려우시다면 선풍기라도 반드시 사용하셔야 합니다. 창문을 열어 맞바람을 만들고, 젖은 수건을 목과 이마에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체감온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물은 목이 마르지 않아도 시간을 정해 조금씩 자주 마시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주민센터나 복지관의 무료 냉방쉼터를 적극 이용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무작정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보다 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더위를 피하고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경로당이나 복지관에 냉방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관할 주민센터에 문의해보시길 권합니다.
가족이나 이웃의 관심도 절실합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 주변에 계시다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안부 전화를 드려주세요. 말씀이 평소와 다르게 어눌하거나, 땀을 많이 흘리는데도 피부가 건조하다면 즉시 시원한 곳으로 모시고 수분을 공급해야 합니다. 의식이 흐릿하거나 구토 증상이 있다면 바로 119에 연락하셔야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원도 절실합니다. 저소득 어르신을 위한 냉방비 지원을 확대하고, 방문 건강관리 서비스를 폭염기간에 집중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제천시처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직접 찾아가 건강을 점검하는 지역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전국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밥 한 끼에 사람 냄새가 그리워서 나온다”는 한 어르신의 말씀처럼, 외로움과 경제적 부담이 겹친 상황입니다. 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그보다 훨씬 큰 비용과 고통이 따릅니다. 무더운 여름,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의료계와 복지체계, 그리고 이웃 모두의 관심과 실천이 절실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