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 잘 맞춰도 끝이 아니다…당뇨 환자가 호소하는 ‘기술 피로감’

당뇨병 관리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면서 혈당 조절 성과는 분명히 개선됐지만, 정작 환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부담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신 기기를 사용하면서 오히려 심리적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끊임없는 알람과 데이터 노출로 ‘정보 과부하’를 경험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게펜의대 에스텔 에버렛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24년 8월부터 2025년 2월까지 UCLA 헬스시스템에서 치료받는 성인 제1형 당뇨병 환자 565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이 중 945명이 응답했으며, 535건의 자유 서술 답변을 분석한 결과가 국제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에 21일 게재됐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연속혈당측정기(CGM)와 인슐린펌프, 자동인슐린전달시스템(AID) 등 현대 당뇨병 기술을 사용하는 환자들의 실제 경험이었다. 기존 연구들이 당화혈색소 감소나 저혈당 예방 같은 임상 지표 위주로 효과를 평가했다면, 이번 연구는 환자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심리·사회적 영향에 집중했다.

분석 결과 환자들의 경험은 ‘편익과 부담의 공존’으로 요약됐다. 가장 많은 응답이 집중된 영역은 심리·정서적 영향으로, 321건의 답변이 이 주제를 다뤘다. 실시간으로 혈당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안심을 주지만, 동시에 지속적인 데이터 노출 자체가 새로운 불안 요인이 된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한 30대 여성 환자는 “혈당 수치를 항상 알고 있다는 것이 정보 과부하가 돼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로 이어진다”며 “예전 혈당계를 쓸 때보다 숫자를 덜 걱정하기는커녕 더 자주 신경 쓰게 됐다”고 토로했다. 기기가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심리적 부담도 함께 증가하는 역설적 상황이 확인된 것이다.

기기 정확도에 대한 불안도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한 30대 여성은 CGM이 ‘위험한 저혈당’을 경고했지만 실제 손가락 채혈 결과 혈당이 400mg/dL로 나왔다며, “만약 경고를 그대로 믿고 대응했다면 당뇨병케톤산증에 빠질 뻔했다”고 밝혔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서 기기 오작동은 환자에게 극심한 불안을 안겨줬다.

연구진은 기존 환자보고결과지표에 거의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부담 요인도 확인했다. 환경 부담, 여행 스트레스, 보험 및 기기 교체 행정 부담, 디지털 개인정보 보호 우려 등 4개의 새로운 주제가 추가로 도출됐다.

특히 환경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고민거리로 제기됐다. CGM 센서와 인슐린펌프 소모품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부품은 대부분 재활용이 불가능한 의료폐기물이다. 환자들은 일회용 플라스틱 부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상당한 양의 폐기물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우려했다. CGM과 AID 보급이 확대될수록 이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 연구는 당뇨병 기술 발전이 단순히 혈당 수치 개선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환자가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는 다층적 부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술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재의 당뇨병 진료 환경에서, 환자 중심의 접근이 더욱 절실해졌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