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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간 전격적인 종전 선언은 지난 수십 년간 중동 지역을 지배해온 안보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번 합의가 단순한 정전(停戰)을 넘어 지역 질서의 재구성으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 휴지기에 불과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평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워싱턴의 결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에 대한 테헤란의 수수료 징수 권한을 미국 측이 사실상 인정한 부분이다. 이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유지되어 온 양국 간 대결 구도에서 미국이 전략적 양보를 단행했음을 시사한다. 전 세계 원유 운송의 약 21%가 통과하는 이 전략적 수로에 대한 통제권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이슈를 넘어 지역 패권의 상징적 요소였다. 따라서 이번 양보는 미국의 중동 개입 전략이 직접 통제에서 간접 관리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극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역내 불안정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특히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는 종전 합의를 사실상 무시하는 태도로 레바논에 대한 군사작전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이스라엘군이 실행한 대규모 공습은 이러한 독자노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텔아비브 입장에서 미-이란 화해는 오히려 자국의 전략적 고립을 심화시킬 수 있는 위협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구도는 1970년대 데탕트 시기 중동의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당시 미소 간 긴장완화가 진행되었음에도 역내 대리전은 오히려 격화되었던 선례가 존재한다. 강대국 간 합의가 지역 행위자들의 독자적 안보 이해관계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이스라엘의 행보 역시 이와 유사한 패턴을 따르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네타냐후는 국내 정치적 생존과 안보 논리를 앞세워 독자 행동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테헤란 측은 미국의 신뢰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오바마 정부가 체결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전례가 이러한 불신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 문제가 이번 종전 합의에서 실질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향후 갈등 재발의 화약고로 남아 있다.
미국 내부의 정치적 반응도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일각에서는 호르무즈 통항권 양보와 핵 문제 미해결을 들어 “트럼프의 패배”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특히 강경 보수 진영은 실질적 성과 없이 전략적 자산만 양보했다는 비판을 제기하며, 이번 합의가 과거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처럼 결국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는 회의론을 표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종전이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부가 검토 중인 약 454조 원 규모의 재건 기금은 전후 복구라는 명분과 함께 서방 자본의 중동 재진출을 위한 경제적 교두보로 기능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은 1990년대 걸프전 이후 중동 재건사업 참여 경험과 건설·플랜트 부문의 기술 경쟁력을 고려할 때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
금융시장의 반응은 이러한 기대심리를 즉각적으로 반영했다. 종전 소식 직후 한국 증시는 8,500선을 회복했으며,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상승하는 등 위험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났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장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군사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종전이 진정한 평화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조적 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이란의 역내 대리세력 네트워크에 대한 통제 메커니즘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이스라엘을 포함한 역내 동맹국들과의 안보 협의체계가 재정립되어야 한다. 셋째, 핵 문제에 대한 검증 가능한 합의가 후속 협상을 통해 도출되어야 한다.
결국 이번 미-이란 종전은 중동 안보 질서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 지속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역사는 종전 선언이 곧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반복적으로 제시해왔다. 한반도의 정전협정이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못한 사례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 수개월간 이루어질 후속 협상과 역내 행위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이번 합의의 진정한 의미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