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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 살 직장인이 십 년간 근무하던 인쇄업체에서 해고당했다. 이유는 업무 능력 저하. 거래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고, 회의 시간엔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음 날도 출근길에 올랐고, 집에서 회사로 하루에 서른 번 넘게 전화를 걸었다. 가천대 길병원 박기형 신경과 교수가 내린 진단명은 ‘전두측두 치매’였다. 한창 돈을 벌어야 할 나이, 어린 자녀를 키워야 할 가장에게 찾아온 질병이었다.
치매는 더 이상 노인만의 병이 아니다.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는 전체 치매의 약 10%를 차지한다.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 교수는 “실제 진료실에서는 흔한 일”이라며 “목사 지망생, 간호사, 변호사, 의사까지 다양한 직업군에서 40·50대 환자를 만난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초기 증상을 우울증이나 번아웃으로 오인한다는 점이다.
최근 의학계는 식습관이 치매 발병 위험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공중보건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50세 이상 성인 5,300여 명을 평균 9년간 추적한 결과, 초가공식품을 가장 많이 섭취한 그룹은 가장 적게 먹은 그룹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58% 높았다. 인지기능 저하 위험도 46% 증가했다. 포장 쿠키, 핫도그, 감자칩 같은 편의 식품이 비만과 심혈관질환을 넘어 뇌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의미다.
하버드 보건대학원 연구진은 교육 수준, 소득, 흡연, 운동량 등 다양한 변수를 통제한 뒤에도 초가공식품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최다 섭취군뿐 아니라 중간 수준 섭취군도 위험도가 높았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식단의 질뿐 아니라 식품의 가공 정도 자체가 중요한 변수”라고 설명했다.
반면 뇌 건강을 지키는 식품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미국 로마린다대 연구진이 약 4만 명을 15년간 관찰한 결과, 달걀을 주 2~4회 섭취한 그룹은 전혀 먹지 않은 그룹보다 치매 위험이 20% 낮았다. 주 5회 이상 먹으면 위험 감소 폭은 27%까지 확대됐다. 달걀에 풍부한 콜린과 비타민 B12가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생성을 돕고 인지 능력 유지에 기여한 결과다.
녹차의 항산화 물질인 EGCG와 L-테아닌은 신경세포 손상을 억제하고 주의력 향상을 돕는다. 2022년 코호트 연구에서는 녹차를 꾸준히 마신 그룹에서 우울 증상 완화와 인지 기능 저하 억제 효과가 확인됐다. 카카오 함량 70% 이상 다크초콜릿에 든 플라바놀은 뇌 혈류량을 늘리고 신경세포를 보호한다. 2024년 국제학술지 뉴트리언츠에 실린 연구에서는 카카오 폴리페놀이 풍부한 다크초콜릿 섭취 후 인지 과제 정확도가 유지되고 뇌 활성화 효율이 높아졌다.
강황의 커큐민은 혈액-뇌 장벽을 통과해 뇌 조직에 직접 작용하는 성분이다. 미국 노인 정신의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경도 인지 장애가 있는 50~90세 성인에게 커큐민 90mg을 하루 2회 18개월간 투여한 결과, 대조군 대비 기억력이 약 28% 향상됐다. 뇌 PET 검사에서도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및 타우 단백질 축적이 감소했다. 다만 커큐민은 단독 섭취 시 흡수율이 낮아 흑후추와 함께 먹는 것이 권장된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연구팀이 치매 없는 60세 이상 1,865명을 장기 추적한 결과, 염증 유발 가능성이 낮은 건강한 식단을 유지한 그룹은 이미 알츠하이머 관련 뇌 변화나 신경세포 손상이 진행된 고위험군에서도 치매 발병 위험이 20~30% 낮았다. 지중해식 식단처럼 신선한 과일과 채소, 통곡물, 생선, 올리브오일 위주로 식사하는 습관이 뇌 건강 보호에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가공육, 붉은 고기, 당 함유 음료 섭취를 줄이고 채소와 과일, 견과류, 통곡물 섭취를 늘리는 식습관이 뇌 건강 유지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만성 염증이 신경염증과 신경퇴행을 촉진해 알츠하이머병 진행에 관여한다는 기존 연구와도 맥을 같이한다. 치매는 노년에 갑자기 찾아오는 질병이 아니라 수십 년간 쌓인 생활습관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