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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위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집을 마련하거나, 넓은 평수로 옮겨 함께 사는 부모가 늘고 있다. 손주 돌봄을 맡고 생활비를 보태며 ‘한 지붕 세 가족’을 꾸리는 모습이 이제 낯설지 않다.
소통 전문가 김창옥은 tvN ‘김창옥쇼2’에서 “부모 자식 간에도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공간의 간격이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의 관점에 비추어 보면, 자녀와의 거주 거리를 정할 때 우리가 망치기 쉬운 것들이 보인다.
3위 – 자녀 부부의 사생활
같은 층, 같은 동에 살면 편하다는 생각에 집을 구한다. 열쇠를 서로 맡기고 냉장고를 공유하며 경계 없는 왕래가 시작된다. 처음엔 모두가 좋아한다.
하지만 며느리가 늦잠 자는 주말 아침, 아들 부부가 다투는 저녁, 손주를 어떻게 키우는지 지켜보게 되는 순간들이 쌓인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게 되고, 참견하지 않으려 해도 말이 나간다. 자녀 부부는 친정 눈치와 시댁 눈치 사이에서 숨 쉴 틈을 잃는다.
적정한 거리는 서로의 일상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 그 몇 초가, 관계를 지키는 여백이 된다.
2위 – 부모 자신의 노후 자율성
자녀 곁에 있으면 안심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면 누가 챙기고, 급할 때 누가 달려올지 계산하며 집을 옮긴다. 손주 돌봄을 명분 삼아 자녀 직장 근처로, 자녀 학군 안으로 생활 반경을 좁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부모의 시간표는 자녀 가족의 스케줄에 종속된다. 오전엔 어린이집 등원, 오후엔 학원 픽업, 저녁엔 저녁 차리기. 친구들과의 약속은 “손주 봐야 해서”라는 말로 미뤄지고, 가고 싶던 문화센터 강좌는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한다.
자녀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부모 자신의 삶은 멀어진다. 적정한 거리는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만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부모에게도 자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거리가 말해준다.
1위 – 관계의 그리움
너무 자주 보면 고마움이 익숙함으로 바뀐다. 매일 만나는 얼굴은 특별함을 잃고, 함께하는 식사는 당연한 루틴이 된다. 자녀는 부모가 해주는 것을 권리처럼 받아들이고, 부모는 자녀가 챙기지 않는 것에 서운해한다.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 만남이 소중해진다.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고, 만나려고 준비해야 하니 상대가 귀해진다. 함께 먹는 밥 한 끼가 이벤트가 되고, 손주 얼굴 보는 날이 기다려진다.
그리움은 거리가 만드는 감정이다. 가까이 있으면 투명해지고, 조금 떨어지면 선명해지는 것이 사람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그리워할 만큼의 거리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힘이 된다.
자녀와 어느 정도 떨어져 살아야 할지 고민된다면, 오늘 한 가지만 점검해보면 된다. 연락 없이 자녀 집 문을 여는 일이 있는지, 자녀가 허락 없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 작은 경계가 지켜지고 있다면, 지금 거리는 적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