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공개된 여러 사건들이 결혼생활 속 배우자 및 시댁과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 심리적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회적 경종을 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정 내 지속적인 정서적 학대가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주 방송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20년 넘게 시댁의 괴롭힘을 견디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여성의 사연이 공개됐다. 결혼 21년 차인 이 여성은 남편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로부터 지속적인 언어폭력과 따돌림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동짓날 자신의 팥죽 그릇에서만 머리카락 뭉치가 발견됐고, 이를 의도적인 괴롭힘으로 받아들였다는 증언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이러한 가정 내 정서적 학대가 신체적 폭력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가해자가 다른 가족 구성원 앞에서는 정상적으로 행동하다가 피해자와 단둘이 있을 때만 공격적으로 변하는 ‘이중적 태도’는 피해자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의심을 갖게 만들어 심리적 고립감을 더욱 심화시킨다.
해당 사연의 여성은 둘째 출산 후 모유 수유 중에도 시어머니로부터 외모 비하 발언을 들었고, 시누이는 이를 옆에서 조롱했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그는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됐고,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정신건강이 악화됐다. 남편에게 수차례 이혼을 요구했지만 남편은 “이제 우리 가족을 이해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그에게 인내를 강요했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5년 전 시아버지 장례식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는 남편을 위로하기 위해 등을 토닥이다가 뒤에서 시어머니에게 팔을 붙잡히고 등을 여러 차례 맞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장례식장을 나오자마자 공황 증상을 보이며 주저앉았고, 온몸에 식은땀이 쏟아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례에서 배우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정폭력 상담 전문가들은 “배우자가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관하거나 피해자에게 참을 것을 요구할 경우, 피해자는 심리적으로 완전히 고립되며 이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시누이 역시 “오빠와 우리를 갈라놓지 말라. 언니는 이혼하면 남이지만 우리는 가족”이라며 사연자를 비난했다는 증언은 가족 관계에서의 경계 설정 문제를 드러낸다. 가족상담 전문가들은 결혼 후에도 원가족과의 과도한 밀착이 배우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표출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편 해외에서는 배우자 폭력이 더욱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진 사례도 보고됐다. 미국에서는 남편의 미성년자 부적절 접촉 의혹을 공개 폭로한 여성 인플루언서가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43세 여성은 소셜미디어에서 3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였으며, 남편이 지도하던 유소년 농구팀 선수에 대한 성추행 혐의로 신고된 후 별거에 들어갔다.
법원은 남편에게 약 91미터 이상 거리를 유지할 것을 명령했지만, 남편은 이를 어기고 여성의 집에 침입해 그를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지 경찰은 이 사건을 가정폭력 관련 살인-자살 사건으로 분류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반대로 경북 경산에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방화 사건으로 50대 여성이 숨지면서 한 남편이 깊은 슬픔에 빠진 사례도 있었다. 결혼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이 부부는 주변에서 모범 부부로 알려져 있었다. 남편은 “눈가에 맺힌 눈물도 닦아주지 못했다”며 오열하며 아내를 떠나보냈다.
전문가들은 가정 내 갈등과 폭력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공중보건 이슈라고 강조한다. 특히 정서적 학대의 경우 외부에서 인지하기 어렵고 피해자 스스로도 ‘내가 예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자기 의심에 빠지기 쉬워 조기 개입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배우자나 시댁으로부터 지속적인 언어폭력, 무시, 따돌림 등을 경험할 경우 즉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고한다. 또한 주변에서 이러한 상황을 목격할 경우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전문 기관에 연결해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