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열두 척..” 이순신 장군이 말한 희망의 근거 1위

사람은 누구나 바닥을 칩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건강이 흔들리고, 관계가 깨집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잃은 것만 셉니다. 백 개를 가졌다가 아흔아홉 개를 잃으면, 남은 한 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건 텅 빈 자리뿐이지요. 그래서 “이제 끝이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1597년, 이순신 장군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궤멸했고, 이순신에게 남은 배는 고작 열두 척이었습니다. 조정은 수군을 폐하고 육군에 합류하라 명했습니다. 그때 장군은 선조에게 이렇게 장계를 올렸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잃은 수백 척이 아니라, 남은 열두 척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열두 척으로 명량에서 승리했습니다. 장군이 보여준 희망의 태도를 세 가지로 나눠 봅니다.

3위 – 남은 것을 세는 습관

우리는 손실에 민감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손실 회피 편향’이라 부릅니다.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이 두 배 이상 크게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잃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남은 것은 과소평가합니다. 이순신은 달랐습니다. 그는 냉정하게 남은 열두 척을 세었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당신에게도 분명 남은 것이 있습니다. 건강의 일부, 시간의 일부, 관계의 일부, 경험의 전부가 아직 당신 손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잃은 것 목록 대신 남은 것 목록을 써 보십시오. 열 개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순신에게도 열두 척뿐이었으니까요.

2위 – 작은 것으로 시작하는 용기

많은 사람이 “조건이 갖춰지면” 시작하겠다고 말합니다. 자본이 충분하면, 건강이 회복되면, 때가 무르익으면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다 평생 시작하지 못합니다. 이순신은 열두 척이 백 척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가진 것, 바로 그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최선이 아닌 최소한의 조건으로 출발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완벽한 준비 끝에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했고, 가는 중에 채웠습니다. 당신이 지금 가진 게 적다고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시작 신호입니다. 많아질 때까지 기다리면 영영 시작 못 합니다. 적을 때 시작해야 많아집니다.

1위 – 희망의 언어

이순신의 장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열두 척’이 아닙니다. ‘아직’입니다.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이 ‘아직’이라는 한 단어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이제 열두 척밖에’가 아니라 ‘아직 열두 척이나’였습니다. 같은 상황, 다른 언어입니다. 그리고 언어가 다르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이제 늦었어” “이제 끝났어” “이제 소용없어”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아직 시간이 있어” “아직 기회가 있어” “아직 할 수 있어”라고 말합니까. 두 문장의 사실관계는 같지만, 당신을 이끄는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절망의 언어는 당신을 멈추게 하고, 희망의 언어는 당신을 움직이게 합니다.

오늘부터 ‘이제’를 ‘아직’으로 바꿔 보십시오. 작은 변화 같지만, 당신의 하루를 바꿉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아직 할 수 있다”고 한 번 말해 보십시오. 그리고 가장 작은 일 하나를 시작하십시오. 열두 척으로 명량을 이긴 사람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