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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사랑이 진짜인지 증명하는 사람은 드물다. 말로는 사랑을 외치면서도 정작 상대를 자기 방식대로 바꾸려 들거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소유하려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목격한다. 중년을 넘어서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옭아매고, 그것이 헌신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승려이자 수필가로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 스님은 저서 『무소유』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사랑을 소유가 아닌 나눔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사랑의 본질을 정면으로 짚어낸다. 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진짜 사랑이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들이 있다.
3위 – 상대의 약점을 무기로 쓰지 않는 것
오래 함께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약한 부분을 훤히 알게 된다. 부부 사이든 부모 자식 사이든, 가까운 관계에서 쌓인 정보는 때로 강력한 무기가 된다. 화가 나면 그 약점을 꺼내 들고, “네가 그래서 늘 그 모양이지”라며 상처를 후벼 판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상대의 약점을 보호한다. 알고 있되 들추지 않고, 기억하되 공격의 도구로 삼지 않는다. 나눔이란 좋은 것만 나누는 게 아니라, 상대의 연약함까지 함께 감싸 안는 행위다. 사랑한다면서 상대의 상처를 무기 삼아 휘두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2위 –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
중장년이 되면 자신만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단단히 굳어진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가 하는 대로 해, 그게 맞으니까”라며 자기 방식을 강요하기 쉽다. 배우자에게, 성인이 된 자녀에게, 심지어 친구에게도 자신의 기준을 들이대며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라 믿는다.
그러나 나눔의 관점에서 보면, 진짜 사랑은 상대의 방식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 것을 나누려면 먼저 상대에게도 그만의 것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함께 나눈다는 것은 하나로 통일한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각자의 고유함을 유지하면서도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자기 방식만 옳다고 우기는 순간, 사랑은 지배로 변질된다.
1위 – 상대의 빈자리를 채우려 들지 않는 것
진짜 사랑의 첫째 조건은 상대에게 빈자리를 허락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채우려 든다. 배우자가 혼자 있는 시간을 불안해하고, 자녀가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면 서운해한다. 심지어 친구 사이에서도 자주 연락하지 않으면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법정 스님이 말한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에게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면서, 교차하는 부분에서 진정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에게도 혼자만의 시간과 생각, 그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 내밀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 빈자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침투하려 드는 것은 나눔이 아니라 점령이다.
중년 이후의 많은 갈등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은퇴 후 집에만 있는 남편이 아내의 모든 일정에 끼어들거나, 자녀의 독립을 인정하지 못한 부모가 끊임없이 간섭한다. 그들은 사랑이라 말하지만, 실은 상대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하는 자신의 불안을 채우려는 것에 가깝다.
오늘 저녁,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한 가지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그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시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어주는 것이다. 카톡을 보내지 않아도, 전화를 걸지 않아도, 그 시간 동안 그는 여전히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 진짜 사랑은 끈끈한 밀착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피어나는 신뢰다. 상대의 빈자리를 허락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로 무언가를 나누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