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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노후를 준비하며 건강검진을 받고 연금을 계산하고 취미를 찾는다. 하지만 정작 가장 확실한 미래인 죽음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마치 그 주제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일이 생길 것처럼 피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암 투병 중에 남긴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평생 언어와 문화를 탐구했던 지성인이 생의 마지막에서 발견한 통찰이다.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 오히려 삶을 제대로 사는 길이라는 역설이다. 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죽음 앞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3위 – 관계의 정리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자신에게 진짜 소중한 관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명함과 직함으로 맺어진 관계는 퇴직과 함께 사라지지만, 그것이 전부인 줄 착각하고 살아온 세월이 아깝다.
죽음이라는 렌즈로 지금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우선순위가 명확해진다. 매일 술자리로 만나던 지인보다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는 오랜 친구가, 사업상 파트너보다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가족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정리는 버림이 아니라 선택이다. 남은 시간을 누구와 나눌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2위 – 의미의 재발견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은 대개 하지 않은 일들이다. 늘 미뤄두었던 여행, 배우지 않은 악기, 쓰지 않은 편지. 그러나 더 깊은 후회는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흘려보낸 시간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엇을 했는가’보다 ‘왜 하는가’가 중요해진다. 매일 반복되는 산책도, 손주와 보내는 오후도, 혼자 마시는 차 한 잔도 의미가 달라진다. 그것이 단순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내 삶을 채우는 행위임을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배경이 아니라 삶을 선명하게 만드는 윤곽선이다.
1위 – 두려움의 직면
많은 이들이 노후를 준비하면서 돈과 건강만 챙긴다. 하지만 정작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거부한다. 두려워서 외면하지만,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어령의 말처럼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는 노력은 삶이 무엇인지 아는 과정이다. 죽음을 직시하는 것은 비관이 아니라 현실 인식이다.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사람은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쓰지 않게 된다. 두려움을 마주하는 용기가 남은 날들을 더 진하게 만든다.
오늘 저녁, 종이 한 장을 꺼내 간단한 문장 하나를 적어보면 어떨까. “내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라고. 원대한 계획이 아니어도 좋다.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 한 통, 미뤄둔 책 한 권, 가족과의 저녁 식사.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삶을 더 충실하게 채우는 시작임을 그 작은 목록이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