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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나이를 핑계 삼습니다. “이 나이에 뭘”, “벌써 이렇게 늙었는데”라는 말로 스스로를 가둡니다. 마치 나이 드는 것이 익숙한 일인 양, 나이가 많다는 것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인 양 살아가지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정말 나이 드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일까요?
배우 윤여정은 2013년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67살이 처음이야.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당시 67세였던 그는 자신의 나이를 당당하게 밝히면서도, 그 나이를 처음 살아본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했습니다. 이 한 마디는 우리가 나이 듦에 대해 갖고 있던 착각을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그의 말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오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3위 – 나이가 많으면 인생을 다 안다는 착각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자신이 인생을 충분히 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할 자격이 있고, 세상 이치를 꿰뚫고 있다고 여기지요. 하지만 60대를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60대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윤여정의 말처럼 우리는 매년 그 나이를 처음 살아봅니다. 55세를 살아본 적 있어도 56세는 처음입니다. 경험이 있다는 것과 지금 이 나이를 살아본 적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초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 맞이하는 나이 앞에서 겸손해져야 하지요.
2위 – 나이 들면 변화가 어렵다는 선입견
많은 사람들이 “이 나이에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변화하기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나이를 처음 살아보는데, 어떻게 미리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67세를 처음 살아보는 사람에게 67세의 한계를 누가 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매일 처음 맞이하는 오늘을 삽니다. 어제까지의 경험이 있지만, 오늘이라는 날은 처음입니다. 그러니 “이 나이에는 이래야 한다”는 틀에 스스로를 가둘 이유가 없습니다.
처음 살아보는 나이라면, 그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우리가 직접 경험하며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내 경험으로 그 나이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1위 – 나이가 핑계가 될 수 있다는 착각
가장 큰 오해는 나이를 핑계 삼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나이가 있어서”, “이제 늙어서”라는 말로 새로운 시도를 미루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나이를 처음 살아보는데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처음 살아보는 나이라는 것은 그 나이의 가능성도 한계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60대를 처음 살아보는 사람이라면 60대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직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모른다는 것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지요.
나이를 핑계로 삼는 순간, 우리는 처음 살아보는 이 나이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립니다.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살아보는 나이라면, 그 나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내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오늘 저녁,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시면 어떨까요. “나는 지금 이 나이를 처음 살아보고 있다”고요. 그리고 미뤄왔던 일 중 가장 작은 것 하나를 내일 시작해보십시오. 악기 학원 전화번호를 검색하는 것이든, 오래전 사고 싶었던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처음 살아보는 이 나이에, 당신은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초보자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