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이 말한 집보다 먼저 채워야 할 것 3가지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인생의 가장 큰 목표로 여긴다. 평수와 평면도를 비교하고, 청약 점수를 계산하고, 대출 한도를 알아보는 일에 주말을 보낸다. 그러나 정작 왜 집을 갖고 싶은지, 그 집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묻지 않는다. 집은 수단이었는데 어느새 목적이 되어버렸다.

시인 나태주는 시 「행복」에서 이렇게 썼다. “저녁 때 /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 힘들 때 /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그는 집을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돌아갈 곳으로, 사람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할 대상으로 표현했다. 이 짧은 시구는 우리가 내 집 마련보다 먼저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3위 – 돌아가고 싶은 마음

집은 소유하는 순간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시인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지, “소유한 집이 있다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소유 여부가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이 집의 본질이다.

월세로 살든 자가로 살든, 퇴근길에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집이 진짜 집이다. 반대로 억대 빚을 지고 산 아파트라도 그곳에 가기가 두렵다면 그건 집이 아니라 채무의 주소일 뿐이다. 집을 구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돌아가고 싶은 곳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2위 – 함께할 사람

시인은 집과 사람을 나란히 놓았다. 집이 있다는 것과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같은 무게로 다뤘다. 이것은 집이 결국 사람과 함께할 공간임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마련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지만, 정작 그 집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넓은 거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거실에서 나눌 대화이고, 방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방에서 나와 함께 모일 이유다. 집을 사기 전에 먼저 채워야 할 것은 그 집에서 함께 웃고 울 사람과의 관계다.

1위 – 마음속 안식

“힘들 때 /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이 강조한 것은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마음속 위안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진짜 집은 주소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안식의 이미지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집을 사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취미를 포기하고, 여행을 미루고,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 그렇게 마침내 집을 사지만 마음은 텅 비어 있다. 힘들 때 떠올릴 수 있는 기억도, 위로받을 경험도 없다. 집이라는 공간은 생겼지만 정작 그 안을 채울 내면의 풍요는 사라진 것이다. 내 집 마련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속에 돌아갈 안식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 저녁, 지금 사는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꽃 한 송이를 사보는 건 어떨까. 소유한 집이 아니어도 좋다. 그곳을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연습은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집을 사는 일은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