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해협 통제력은 과거가 되었나?…전쟁 중에도 원유 수송 정상화가 의미하는 투자 시그널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몇 개월, 시장은 원유 공급 차질과 에너지 가격 폭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데이터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미 해군의 호위 아래 운영되는 은밀한 셔틀 선박 시스템과 주요 산유국의 전략 전환이 맞물리면서,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물류 복구를 넘어 이란의 전략적 지렛대가 실질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해상 데이터 분석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지난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 및 석유제품은 하루 평균 1310만 배럴로 집계됐다. 전쟁 발발 이전 하루 1710만 배럴과 비교하면 약 77% 수준까지 회복한 수치다. 전쟁 초기 해협 봉쇄 우려로 물량이 급감했던 것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이룬 놀라운 반등이다. 케이플러의 맷 스미스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는 이처럼 많은 물량이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란의 영향력 상실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회복의 핵심은 미군이 지원하는 ‘다크 방식’ 셔틀 선박 운용에 있다. 이는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이 미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이란 감시망 아래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은밀히 통과한 뒤, 상대적으로 안전한 해역에서 선박 간 환적을 통해 수출 물량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추적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끄고 이동하는 이 전략은 군사적 보호와 상업적 유연성을 결합해 이란의 위협을 우회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지난 두 달간 이 시스템을 통해 걸프 산유국의 원유 수송량이 크게 증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 변경도 해협 통항량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우디는 전쟁 발발 직후 상당량의 원유를 동서 송유관을 통해 홍해로 우회시켰다. 하지만 이달 초 이란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이 송유관을 공격하면서 하루 약 700만 배럴의 수송이 일시 중단됐다. 이 중 절반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피해 우회하던 물량이었다. 사우디는 이후 일부 원유를 다시 호르무즈 해협으로 전환했다. 최근 위성사진에서는 사우디 서부 해안의 핵심 항구인 얀부와 알 무아지즈의 7개 선석이 모두 가동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는 동서 송유관이 복구되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사우디가 호르무즈 경로를 다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회 수송까지 포함하면 중동 전체 원유 수출량은 사실상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JP모간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동산 원유 수출량이 하루 평균 1750만 배럴에 달하며, 이는 전쟁 이전 물량의 98%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걸프해역과 홍해를 통한 수출량을 모두 합산한 추정치로, 이란의 봉쇄 시도가 실질적인 공급 차질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투자자 관점에서 이 흐름은 두 가지 상반된 시그널을 동시에 던진다. 첫째는 에너지 공급 리스크 완화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량 회복과 우회 경로 정상화는 글로벌 원유 공급망이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란의 위협이 실제 공급 차질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유가 상승 압력은 제한적일 수 있다. 실제로 정제마진 급등으로 수혜를 입었던 정유 기업들의 실적 모멘텀이 하반기 들어 둔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배럴당 20달러를 넘어섰던 싱가포르 정제마진이 공급 안정화와 함께 조정 국면에 진입할 경우, SK이노베이션 같은 국내 정유사의 이익 추정치 역시 하향 조정될 여지가 있다.

둘째는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의 재평가다. 이란의 해협 통제력 약화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 주도 질서가 군사적·경제적으로 재확립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기적으로 에너지 안보 우려를 완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란과 그 우방국들의 비대칭 대응 가능성을 높인다. 사이버 공격, 테러, 인접국 산유 시설 타격 같은 우회 전략이 다시 부상할 경우 예측 불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이란은 인접국 산유 시설에 대한 폭격을 통해 유가 상승을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한 바 있다. 이런 비대칭 위협은 기존 방어 체계로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

보험 시장의 반응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통과 유조선에 최대 200억 달러 규모의 전쟁 위험 재보험 프로그램을 제시했지만, JP모건은 해협에 갇힌 유조선 전체를 보장하려면 약 35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미군이 호위하더라도 런던 해상보험시장에서 보험료를 인상하면 유조선 운항 유인이 사라진다. 보험료 변화는 실질적인 물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며, 이는 정제 기업의 마진 구조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섹터 외에도 해운·물류 기업의 실적 변동성이 커질 전망이다. HMM 같은 국내 선사는 중동 노선 비중이 높아 지정학적 리스크에 민감하다. 호르무즈 해협 내측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물리적 피해뿐 아니라 보험료 상승과 운항 지연 리스크를 동시에 높인다. 정부가 중앙해양안전심판원과 소방청 전문가를 급파해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피격 여부가 확인될 경우 선박 안전 비용은 추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중동 원유 수출량이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사실은 시장의 과도한 공급 우려가 완화될 여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것이 리스크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란의 전략적 선택지가 제한되면서 예측 불가능한 비대칭 대응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다. 투자자는 에너지 가격 안정화 수혜주와 지정학 리스크 헤지 수단을 동시에 점검해야 하는 복잡한 국면에 진입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량 회복은 안도 신호이자 동시에 새로운 경계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