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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계를 쌓아야 한다고 믿는다. 동창회, 친목회, 취미 모임까지 빠짐없이 참석하고, 명절이면 수십 통의 안부 문자를 돌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계가 많아질수록 마음은 더 피곤해진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왜 만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승려이자 수필가였던 법정 스님은 생전에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물건뿐 아니라 관계에도 적용된다. 불필요한 관계를 붙들고 있는 것 역시 소유욕의 한 형태다. 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중장년이 된 지금 정리해야 할 관계들이 있다.
4위 – 의무감만 남은 모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 있다. 처음엔 즐거웠지만 이제는 빠지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만 남았다. 모임 날짜가 다가오면 핑계를 생각하다가도 결국 참석한다.
의무감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에너지를 빼앗는다. 함께 있어도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고, 대화는 겉돌기 일쑤다. 이런 모임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진정성이 없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형식만 남은 관계를 인정하는 용기다. 의무감이 즐거움을 대신한 순간, 그 관계는 이미 끝난 것이다.
3위 – 과거에 묶인 사람
학창 시절 친구, 첫 직장 동료처럼 과거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옛날 이야기만 반복한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추억은 공유하지만 현재는 공유하지 못하는 관계다.
지금의 나는 과거와 다르다. 관심사도, 가치관도, 삶의 방식도 변했다. 그런데도 과거의 내 모습만 기억하는 사람과 만나면 과거의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과거에 대한 집착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좋았던 기억을 간직하되, 그것이 현재의 발목을 잡게 해서는 안 된다.
2위 – 비교와 경쟁을 부추기는 관계
만나고 나면 괜히 내 삶이 초라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자녀 자랑, 재산 이야기, 건강 자랑이 대화의 중심이다.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내 것과 비교하게 된다.
이런 관계는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만날 때마다 스스로를 평가하게 만든다. 누가 더 잘사는지, 누가 더 성공했는지 저울질하는 시간은 공허하다.
중장년의 관계는 경쟁이 아니라 위안이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편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 남겨도 충분하다.
1위 – 나를 소진시키는 사람
전화를 받으면 한 시간 넘게 하소연을 듣게 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이야기만 하고, 조언을 구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듣지 않는다. 만나고 나면 온몸의 기운이 빠진다.
법정 스님이 말한 불필요한 것의 정점은 바로 이런 관계다.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사람,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관계는 무소유의 정신과 가장 거리가 멀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도 마음의 여력도 한정된다. 그 한정된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나를 소진시키는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돌봄이다.
오늘 저녁, 휴대폰 연락처를 천천히 내려보자. 이름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번호를 주소록의 맨 아래로 옮겨보자. 당장 삭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시각적으로 멀리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우선순위가 정리된다. 불필요한 관계를 갖지 않는 첫걸음은, 그렇게 작은 거리두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