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상위층이 되라..” 김형석 교수가 말한 65살 넘어 최악의 용돈 습관 1위

자녀에게 용돈을 얼마나 주어야 할까요. 월급의 몇 퍼센트가 적당한지, 손주들에게는 또 얼마를 쥐어주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고, 혹시 내가 너무 적게 주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지요.

107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백 년을 살며 수많은 사람을 지켜본 그가 내린 결론입니다. 이 가르침을 용돈이라는 일상의 문제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피해야 할 습관들이 명확해집니다.

4위 – 자녀 수입에 맞춰 계속 올려주기

자녀가 승진하거나 사업이 잘되면 용돈을 올려달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의 생활 수준이 높아졌으니 부모가 주는 용돈도 그에 맞춰야 한다는 논리지요.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 여유를 정신적 성숙과 혼동하는 태도입니다.

김형석 교수가 말한 ‘정신적 상위층’은 물질에 끌려다니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자녀의 수입에 맞춰 용돈을 올려주면, 그것은 자녀를 경제적 상위층으로만 키우는 일이 됩니다. 진정한 효는 부모가 얼마를 주느냐가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지요.

3위 – 남들 주는 만큼 따라 주기

주변 친구들이 자녀에게 얼마를 주는지 물어보고, 그 평균에 맞추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웃집에서 명절마다 백만 원씩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것은 중산층의 경제에 머무르지 못하고 남의 기준에 끌려가는 태도입니다.

김형석 교수의 말대로 중산층에 머문다는 것은 자신의 형편을 아는 것입니다. 남들이 얼마를 주든 내가 줄 수 있는 만큼을 주고, 그것으로 당당한 것이 진짜 중산층의 품격이지요. 남의 기준에 맞춰 무리하면 경제도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립니다. 내 형편에 맞는 용돈이 가장 떳떳한 용돈입니다.

2위 – 용돈으로 자녀 마음 사려 하기

자녀와 사이가 소원할 때, 용돈을 많이 주면 관계가 좋아질 거라 기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 나누기 어색한 사이를 돈으로 메우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정신적 상위층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습관입니다.

김형석 교수가 말한 정신적 상위층은 관계의 본질을 아는 사람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는 용돈 액수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으로 관계를 사려 할수록 서로가 더 멀어지지요. 자녀가 원하는 것은 많은 돈이 아니라 진심 어린 대화 한마디일 때가 많습니다. 용돈을 올리기 전에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이 정신적 상위층의 태도입니다.

1위 – 용돈 액수로 사랑 증명하려 하기

가장 피해야 할 습관은 용돈을 많이 줄수록 자녀를 더 사랑하는 것이라 믿는 태도입니다. 적게 주면 미안하고, 많이 주면 뿌듯해하는 마음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경제와 정신을 모두 잃는 지름길입니다.

김형석 교수는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무리해서 많이 주는 것은 중산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 상위층은 사랑이 액수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십만 원을 주든 백만 원을 주든, 그 안에 담긴 마음이 같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요. 오히려 무리하게 많이 주면서 불안해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가난한 태도입니다. 내 형편에 맞는 만큼을 담담하게 주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다음 용돈을 줄 때, 액수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말해보는 것입니다. “이게 엄마가 줄 수 있는 만큼이야.” 변명이 아니라 당당하게 말이지요. 그 한마디가 자녀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자신의 형편을 알고 흔들리지 않는 어른의 태도입니다. 그것이 김형석 교수가 말한 정신적 상위층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