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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 직장인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10년 가까이 인쇄업계에서 일해온 숙련 노동자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업무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래처 이름이 떠오르지 않고, 회의 시간엔 멍하니 앉아있기 일쑤였다. 결국 해고 통보를 받았고, 놀랍게도 다음 날 그는 다시 회사로 향했다.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집에서 회사로 수십 통의 전화를 반복했다.
가천대 길병원 박기형 신경과 교수가 진료한 이 환자는 ‘전두측두 치매’ 판정을 받았다. 박 교수는 “한창 돈을 벌어야 할 나이에 어린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런 사례가 결코 드물지 않다고 강조한다. 65세 이전에 발생하는 초로기 치매가 전체 치매의 약 10%를 차지하며,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목사 지망생, 간호사, 변호사, 의사까지 다양한 직업군에서 환자가 발견된다.
초로기 치매는 노인성 치매와 증상이 다르다. 기억력은 멀쩡한데 판단력과 충동 조절 능력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이나 번아웃으로 오인하기 쉬워 조기 발견이 어렵다. 특히 전두측두 치매 환자들은 식습관이 급격히 변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탈리아 국제고등연구학교(SISSA)의 마릴레 데 아세이도 연구원은 “전두측두 치매 환자는 체중이 증가하거나, 반대로 특정 음식에만 집착해 체중이 감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단 음식만 찾거나 과식하는 행동,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모습이 나타난다면 치매 초기 신호일 수 있다. 이는 뇌의 자율신경 회로 이상으로 배고픔과 포만감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발생한다. 이러한 식습관 변화는 기억력 장애보다 먼저 나타나기도 해 조기 발견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반대로 치매를 예방하는 식습관도 연구를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미국 로마린다대 연구팀이 약 4만 명을 15년간 추적한 결과, 일주일에 2~4회 달걀을 섭취한 그룹은 전혀 먹지 않은 그룹보다 치매 위험이 20% 낮았다. 주 5회 이상 먹을 경우 위험 감소 폭은 27%까지 커졌다. 달걀에 풍부한 콜린과 비타민 B12가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 생성을 돕고 인지 능력 유지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핀란드 이스턴대 연구진도 43~60세 남성 2497명을 22년간 관찰한 결과, 포스파티딜콜린 등 콜린 계열 성분 섭취량이 많은 집단의 치매 발생률이 28% 낮았다고 보고했다. 참가자들은 이 성분을 주로 달걀(39%)과 육류(37%)에서 얻었다.
녹차도 효과적인 예방 식품으로 주목받는다. 녹차의 EGCG 성분은 신경세포 손상을 억제하고, L-테아닌과 카페인의 상승작용으로 주의력과 기억력 향상을 돕는다. 2022년 코호트 연구에서는 녹차를 꾸준히 마신 그룹에서 인지 기능 저하가 억제되는 경향이 확인됐다.
카카오 함량 70% 이상의 다크초콜릿도 뇌 건강에 긍정적이다. 2024년 국제학술지 뉴트리언츠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카카오 폴리페놀이 풍부한 다크초콜릿 섭취 시 난도 높은 인지 과제에서 정확도가 유지되고 뇌 활성화 효율이 높아졌다.
강황의 커큐민 성분도 주목할 만하다. 2018년 미국 노인 정신의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 경도 인지 장애가 있는 50~90세 성인에게 커큐민 90mg을 하루 2회, 18개월간 투여한 결과 대조군 대비 기억력이 28% 향상됐다. 뇌 영상 검사에서도 알츠하이머 관련 단백질 축적이 감소했다.
반면 초가공식품은 치매 위험을 크게 높인다. 미국공중보건저널에 게재된 연구에서 50세 이상 5300여 명을 평균 9년간 추적한 결과, 핫도그·쿠키·감자칩 같은 초가공식품을 가장 많이 섭취한 사람들은 가장 적게 먹은 사람들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58% 높았다. 중간 수준 섭취자도 위험군에 포함됐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연구팀은 이미 뇌 변화가 진행된 고위험군에서도 지중해식 식단이 효과적임을 확인했다. 60세 이상 186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과일·채소·통곡물·생선 중심의 염증 유발 가능성이 낮은 식단을 유지한 그룹은 치매 발병 위험이 20~30% 감소했다. 연구팀은 “만성 염증이 신경퇴행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항염증 식단의 효과가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가공육과 붉은 고기, 당 함유 음료를 줄이고 신선한 식물성 식품 섭취를 늘릴 것을 권고한다. 식단의 질뿐 아니라 가공 정도도 뇌 건강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거듭 입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