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요금 무서워 집 밖으로”…폭염 속 무료급식소 찾는 독거노인들

울산 중구 반구동의 한 무료급식소 앞. 배식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10시부터 벌써 계단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폭염특보가 열흘 넘게 이어지는 찜통더위 속에서도 노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옮긴다. 냉방비 부담 때문에 집에서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더위를 피해 하루 종일 거리를 떠도는 이들에게 무료급식소는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날 급식소를 찾은 한 노인은 “집에 가만히 있으면 숨이 턱턱 막힌다”며 “에어컨을 펑펑 틀자니 전기요금이 두렵고, 그래서 사람 만나고 밥 주는 곳을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더위를 우려해 예정보다 30분 일찍 문을 열었고, 실내는 순식간에 노인들로 가득 찼다.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오자 한 노인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다른 이들은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며 배식을 기다렸다.

이날 메뉴는 불고기, 잡채, 오이무침, 단무지에 쌀밥과 된장국이었다. 봉사자들이 한 접시 가득 담아준 음식을 받은 노인들은 고개를 숙이며 “잘 먹겠습니다”라고 정중히 인사했다. 먼저 배식을 받은 노인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에게 접시를 양보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평소 80명 안팎이던 이용객은 이날 100여 명으로 늘어나 주방 봉사자들이 급히 밥양을 조절해야 했다.

고물가와 폭염이 겹치면서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인이 급증하고 있다. 한 봉사자는 “요즘처럼 더울 때는 평소보다 20~30명 정도 더 많이 찾아온다”고 전했다. 독거노인들에게 무료급식소는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공간이 아니다. 냉방이 되는 실내에서 더위를 피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적 고립감을 덜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독거노인들은 냉방비 부담 때문에 낮 시간 대부분을 집 밖에서 보낸다. 은행, 병원 로비, 도서관, 대형마트 등 무료로 냉방을 제공하는 공공장소를 전전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한 노인은 “밥 한 끼에 사람 냄새가 그립다”며 “혼자 집에 있으면 말할 사람도 없고 답답해서 이렇게 나오게 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빈곤 문제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여름철 냉방비, 겨울철 난방비 같은 추가 비용 앞에서 더욱 취약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전기요금 고지서 한 장이 두려워 폭염 속에서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거리를 떠도는 노인들의 모습은 복지사각지대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독거노인을 위한 냉난방비 지원 확대와 함께 무료급식소, 경로당 등 커뮤니티 공간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지원을 넘어 사회적 연결망을 유지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서 이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이제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