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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도 중동산 원유 수출량이 전쟁 발발 이전 수준의 98%까지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JP모건의 글로벌 원자재 리서치팀이 2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중동 지역의 하루 평균 원유 수출량은 1750만 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전쟁 이전 1790만 배럴과 비교해 40만 배럴만 적은 수준이다.
원유 수송 회복의 핵심은 미군의 호위를 받는 ‘셔틀 환적’ 방식이었다. 원유나 정제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이 미 해군 함정의 보호 아래 이란의 감시가 집중된 호르무즈 해협을 은밀히 통과한 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해상에서 다른 선박으로 화물을 옮겨 싣는 선박 간 환적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조선들은 위치추적시스템(AIS)을 꺼 ‘다크 모드’로 운항했다.
해양정보업체 케플러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에너지 수송량만 따로 집계했을 때도 하루 1310만 배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쟁 전 하루 1710만 배럴의 77% 수준이다. 케플러의 맷 스미스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는 “이처럼 많은 물량이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송 경로 변경도 수출량 회복에 기여했다. 사우디는 전쟁 발발 직후 상당량의 원유를 동서 송유관을 통해 홍해로 우회 수송했으나,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이달 초 해당 송유관을 공격하면서 하루 약 700만 배럴의 수송이 일시 중단됐다. 이후 사우디는 중단된 물량의 절반 이상을 다시 호르무즈 해협 경로로 전환했다. 케플러의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 서부 해안의 핵심 항구인 얀부와 알 무아지즈의 7개 선석이 모두 가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수송량 회복에도 불구하고 유가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주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으며, 주간 상승률은 35.63%로 1983년 집계 시작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은 2~3주 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원유 수송 정상화에도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는 공급 불안 심리와 재고 감소 때문이다. 런던 해상보험시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한 보험료를 대폭 인상했고, JP모건은 해협에 정박 중인 유조선 전체를 보장하려면 약 3520억 달러 규모의 보험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200억 달러 규모의 전쟁 위험 재보험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업계는 정제마진 상승으로 수혜를 입고 있다.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올해 상반기 배럴당 15.2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하반기에는 20달러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통상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는 만큼 4배 이상의 마진이 확보된 셈이다. 국내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올해 영업이익 10조원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중 정유 부문이 6조2000억원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한국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정박 중인 한국 선박 26척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안전 확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일 아랍에미리트 인근 해역에서 HMM 나무호 기관실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중앙해양안전심판원과 소방청 감식 전문가를 현지에 급파했으며, 피격 여부를 포함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외교부는 31일 한국국제정치학회와 공동으로 서울 중동문제 국제회의를 개최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전쟁 이후 한·중동 관계를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