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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준비하는가. 자녀 학자금, 노후 자금, 건강검진 일정, 여행 계획. 달력을 채우고 통장을 불리는 일에는 열심이면서도, 정작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올 그 순간 앞에서는 눈을 돌린다.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길하다 여기며, 마치 준비하지 않으면 오지 않을 것처럼 외면한다.
2001년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잘 죽기 위한 준비를 차분히 해나가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일까.” 당시 그는 여든을 바라보던 나이였다. 삶의 끝을 앞두고도 그는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연장선 위에 놓고, 그것을 맞이하는 일 역시 하나의 준비로 받아들였다. 그의 말에 비추어 보면, 나이 들수록 준비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4위 – 용서하지 못한 이름 정리
오래 살다 보면 원망의 목록이 쌓인다. 배신한 친구, 무시했던 상사, 멀어진 형제. 그들의 얼굴은 가끔 떠오르고, 떠오를 때마다 가슴 한쪽이 무겁다.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일은 가능하다. 하지만 용서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일은, 그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가는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말한 ‘잘 죽기 위한 준비’는 화해의 준비이기도 하다. 상대를 용서하는 일이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벼이 떠나기 위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용서는 상대의 잘못을 지우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의 응어리를 내려놓는 행위다.
3위 – 미뤄둔 감사
고마웠던 사람들이 있다. 어려울 때 손 내밀어준 이웃, 묵묵히 곁을 지켜준 친구, 말없이 뒷바라지해준 가족. 그러나 그 고마움을 제대로 전한 적이 있는가. “나중에 기회 되면” “언젠가 밥 한번 사야지” 하며 미루다가, 어느 날 부고 소식을 듣고서야 후회한다. 감사는 언제나 지금이 적기다.
추기경의 말처럼 차분히 준비한다는 것은, 마음의 빚을 갚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감사를 표현하지 못한 채 떠나는 것은, 받은 것을 돌려주지 않은 채 문을 닫는 것과 같다. 전화 한 통, 손편지 한 장이면 된다. 거창한 선물이나 자리가 아니어도 괜찮다. 진심이 담긴 짧은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2위 – 정리되지 않은 물건
집 안 구석구석에는 쓰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 있다. 언젠가 쓸 것 같아서, 추억이 담겨서,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들. 서랍 속 낡은 사진첩, 다락에 올려둔 상자, 옷장 깊숙이 밀어 넣은 옷가지. 그것들은 주인이 떠난 뒤에도 남는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에게 짐이 된다.
잘 죽기 위한 준비는 물질의 정리이기도 하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일은, 삶을 되돌아보는 일과 닮았다.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낼수록 중요한 것이 선명해진다. 자녀에게 물려줄 것, 기증할 것, 그냥 버릴 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이 어디에 무게를 두었는지 비로소 보인다.
1위 – 삶의 의미 정의
죽음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많은 사람이 망설인다.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고, 실패했다고 말하기에는 억울하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의 말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잘 죽기 위한 준비는, 잘 살았다는 증명이 아니라 잘 살았다고 스스로 정의하는 일이다.
타인의 기준으로 삶을 평가하지 않는 것.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사랑했는지, 무엇에 마음을 썼는지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렇게 의미를 스스로 부여할 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완성이 된다. 삶의 의미를 남이 아닌 자기 손으로 쓰는 사람만이,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저녁, 노트 한 장을 꺼내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가장 고마웠던 사람” 한 명의 이름을. 그리고 내일, 그에게 전화를 걸거나 짧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이런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