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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겪어본 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된 기분을 느낀다. 육아를 해봤으니 젊은 엄마에게 조언하고, 사업을 해봤으니 후배에게 충고하고, 나이를 먹었으니 젊은이에게 인생을 가르친다. 그런데 그 조언을 듣는 사람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맹자는 『맹자』 이루상편에서 “사람의 병통은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고 했다.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태도라는 뜻이다. 2천 년 전 전국시대에도 사람들은 남을 가르치고 싶어 했고, 그것이 관계를 망쳤다. 맹자의 경고를 오늘날 타인에 대한 혐오가 커지는 맥락에 비추어 살펴보면, 몇 가지 태도가 눈에 띈다.
4위 – 경험을 보편 법칙처럼 말한다
자신이 해본 방식을 유일한 정답처럼 제시하는 태도다. “나는 그렇게 해서 성공했어”라는 말 뒤에는 “너도 그래야 해”라는 강요가 숨어 있다. 시대도 다르고 상황도 다른데, 자기 경험만이 옳다고 우긴다.
이런 태도는 상대를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한다. 상대에게도 나름의 경험과 판단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조언이 아니라 일방적 전달이 되고, 듣는 사람은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관계는 그렇게 멀어진다.
3위 – 묻지도 않은 충고를 건넨다
누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조언한다. 식당에서 옆 테이블 젊은 부부가 아이를 다루는 모습을 보고 끼어들고, 동료의 업무 방식을 보고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말한다. 상대가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 태도의 밑바닥에는 “내가 더 안다”는 우월감이 깔려 있다. 상대는 그 우월감을 즉시 감지한다. 조언의 내용이 아무리 옳아도, 요청하지 않은 가르침은 침범으로 받아들여진다. 상대는 그 사람을 피하기 시작한다.
2위 –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상대가 말을 시작하면 중간에 끊고 자기 의견을 펼친다. “그건 말이야”로 시작하는 긴 설명이 이어진다. 상대의 생각을 다 듣지 않아도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화는 쌍방향이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일방통행이다. 상대는 자신의 말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자신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존중받지 못했다고 기억한다. 그 기억이 쌓이면 혐오가 된다.
1위 – 가르치는 위치에 자신을 둔다
모든 대화를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구도로 설정한다. 자신은 아는 사람, 상대는 모르는 사람으로 전제하고 말을 시작한다. “내가 말해주지”라는 태도가 모든 문장에 배어 있다.
맹자가 말한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태도가 바로 이것이다. 평등한 관계에서도 위계를 만들어낸다. 상대를 학생 취급하고, 자신을 선생 위치에 놓는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먼저 그 일을 해봤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스승으로 규정한다.
이런 태도는 상대를 무능한 존재로 낮춘다. 상대의 자존감을 건드린다. 도움을 주려 했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망친다. 상대는 그 사람을 멀리하고, 결국 그를 혐오의 대상으로 기억한다.
오늘 누군가와 대화할 때, 말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만 확인해보면 된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조언인지, 가르침인지, 아니면 그저 내 경험 공유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상대가 정말 도움을 구했는지 묻고, 그렇지 않다면 입을 다문다. 그 작은 멈춤이 관계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