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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갑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마트 계산대 앞에서, 동네 공원 벤치에서 만나는 낯선 얼굴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을 보는 눈길이 따갑고 날카로워진 자신을 발견하곤 하지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느릿느릿한지, 저 젊은이는 왜 버릇이 없는지, 저 노인은 왜 목소리가 큰지. 첫눈에 재단하고, 단박에 판단하는 습관이 어느새 몸에 배어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짧은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길가에 핀 이름 없는 풀꽃을 두고 한 말이지만, 이 구절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한 번 흘끗 보고 내리는 판단이 아니라, 자세히, 오래 들여다봐야 비로소 그 존재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는 뜻이지요. 그의 시 정신에 비추어 보면, 60살 이후 우리가 경계해야 할 혐오를 부르는 시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3위 – 겉모습만 보고 단정 짓는 눈
버스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이를 보면 ‘요즘 애들은 허영심만 가득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네에서 문신을 한 청년을 만나면 ‘저러니까 사회가 이 모양’이라고 혀를 찹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옷은 오랜 아르바이트 끝에 자신에게 준 선물일 수 있고, 그 문신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예쁜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한두 가지 특징만으로 한 사람을 재단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스스로 닫아버리는 것이지요. 외모, 옷차림, 말투, 직업. 이런 표면적 정보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시선은 결국 우리 안에 혐오의 씨앗을 심습니다.
2위 –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시선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해집니다. ‘사람은 이래야 한다’, ‘이 나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잣대가 생기지요. 그런데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면 불편해집니다. 육십이 넘어서도 염색을 하고 화장을 하는 친구를 보며 ‘나이 값을 못한다’고 수군대고, 손자를 돌보지 않고 여행을 다니는 이웃을 보며 ‘무책임하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나태주 시인이 풀꽃을 오래 본 것처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들여다보면 그들 나름의 이유가 보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은 삶에 대한 의욕이고, 여행을 다니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내 방식과 다르다는 것이 곧 틀렸다는 뜻은 아니지요.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선은 타인을 향한 혐오로 이어지고, 결국 우리 자신을 외롭게 만듭니다.
1위 – 한순간으로 전체를 재단하는 눈
마트에서 계산대 직원이 실수로 거스름돈을 잘못 줍니다. 그 한 번의 실수로 ‘요즘 젊은 직원들은 성의가 없다’고 단정합니다. 동창회에서 친구가 한 번 약속을 어기면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낙인찍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 번의 실수나 한순간의 모습으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해버립니다.
나태주 시인은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습니다. 오래 본다는 것은 시간을 두고 여러 모습을 본다는 뜻입니다. 화창한 날의 풀꽃도 보고, 비 오는 날의 풀꽃도 보고, 바람 부는 날의 풀꽃도 봐야 그 꽃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으며, 실수할 때도 있고 잘할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의 모습, 한순간의 행동으로 그 사람 전체를 재단하는 눈은 60살 이후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선입니다. 이런 성급한 판단은 혐오의 가장 큰 원천이 되지요.
오늘 하루, 당신이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을 한 명 떠올려보시지요. 그리고 그 사람의 좋은 점 한 가지만 찾아보십시오. 아주 작은 것이어도 괜찮습니다. 목소리가 정겹다든지, 옷을 단정하게 입었다든지, 인사를 먼저 한다든지.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미워 보이던 사람에게서도 예쁜 구석이 하나쯤은 보일 것입니다. 그 작은 발견이 혐오 대신 이해를, 단정 대신 여유를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