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박사가 말한 부모에 대한 솔직한 감정 1위

오십 줄을 지나며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내가 자식을 키우는 방식이 부모님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화를 내는 순간, 잔소리하는 말투, 심지어 식탁에서 젓가락을 놓는 방식까지. 그러다 또 깨닫는다. 내가 부모님께 받은 상처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둔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미안함, 원망, 죄책감이 뒤섞인 채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오은영의 화해』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습니다. 그 상처는 당신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수십 년간 가족 관계를 들여다본 전문가의 이 말은, 우리가 평생 금기시해온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그녀의 시선에 비추어 보면, 부모에 대한 솔직한 감정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들이 있다.

4위 – 서운함

부모님이 내 마음을 몰라줬다는 서운함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곁에 없었던 기억,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잘랐던 대화, 형제 중 누군가만 편애했던 장면들. 이런 기억은 나이 들어서도 선명하게 남는다.

그 서운함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길다. 부모님도 힘드셨을 거라고,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 스스로를 달래왔다. 하지만 서운함은 이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3위 – 분노

부모에게 느끼는 분노다. 폭력적인 훈육, 무시하는 말투, 존중 없는 간섭. 어떤 이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인생 전체를 뒤흔들 만큼 깊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부모님을 원망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분노는 잘못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부당하게 대우받았음을 알아차린 정상적인 반응이다. 오은영 박사의 말처럼, 그 상처는 당신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도 사람이기에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분노를 내려놓을 준비가 된다.

2위 – 죄책감

부모를 원망하는 자신에게 느끼는 죄책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나쁜 자식이 아닐까” 하는 자책. 이 죄책감은 서운함과 분노보다 더 오래 남는다. 부모님이 나이 드신 모습을 볼 때마다, 그 감정은 더 무거워진다.

하지만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한 사람 안에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솔직한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시작점이다.

1위 – 용서하지 않을 권리

부모를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 용서하고 넘어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용서는 강요될 수 없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용서를 떠올리는 것은, 상처 위에 반창고만 덕지덕지 붙이는 것과 같다.

용서는 목표가 아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감정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오랜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

오늘 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부모를 미워할 수도 있는 사람이고, 그래도 괜찮다.”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겠다면, 마음속으로라도 한 번 되뇌어보자. 그 순간, 평생 짊어진 죄책감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다. 감정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짜 화해로 가는 첫걸음이다.